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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PBR 전략이 사실은 은행주 전략이었다 — 밸류업 정책 특수를 의심하고 검증한 과정

makewithai 2026. 7. 23. 15:31

살아남은 저PBR 전략을 페이퍼 트레이딩에 넣고 몇 주 지켜보다가 이상한 패턴을 발견했다. 매달 골라지는 10종목 중 4~5개가 은행이나 금융지주였다.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기업은행, 삼성생명. 업종이 자꾸 겹쳤다.

"분산 투자한다고 10종목을 골랐는데, 사실상 은행 한 업종에 몰아넣은 거 아닌가?"

이 의심에서 시작해 두 개의 실험을 돌렸다. 결과는 둘 다 예상과 반대였다.

저PBR 전략이 선정한 10종목 중 5개가 은행·금융지주로 채워진 업종 쏠림 구성도


왜 저PBR은 은행주가 되는가

PBR이 무엇인지 먼저

PBR(주가순자산비율)은 주가 ÷ 주당 순자산이다. 회사가 가진 자산에서 빚을 뺀 장부상 가치 대비, 시장이 그 회사에 얼마를 매기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PBR 0.4라면 장부상 1만 원짜리 회사를 시장이 4천 원에 사고 있다는 뜻이다. "싸다"고 볼 수도 있고, "시장이 그럴 만한 이유로 낮게 본다"고 볼 수도 있다. 저PBR 전략은 앞쪽에 베팅하는 전략이다.

은행이 구조적으로 저PBR인 이유

이유를 찾아보니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였다.

  • 자본이 크게 잡힌다 — 은행업은 건전성 규제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기자본을 반드시 쌓아둬야 한다. 분모(순자산)가 커진다.
  • 성장 기대가 낮다 — 시장이 낮은 배수를 매긴다. 분자(주가)가 눌린다.
  • 번 돈을 배당으로 돌린다 — 성장에 재투자할 데가 마땅치 않으니 주주환원으로 간다. 저성장·고배당 성격이 굳어진다.

분모는 크고 분자는 눌리니 PBR이 항상 낮게 유지된다. 결국 한국 시장에서 "저PBR 종목을 고른다"는 건 상당 부분 "은행주를 고른다"와 같은 말이었다.

문제는 이게 위험한가였다. 한 업종에 쏠려 있으면 그 업종이 흔들릴 때 계좌 전체가 같이 흔들리는 것 아닌가.


실험 1 — 업종을 강제로 분산시켜봤다

업종당 최대 보유 종목 수를 제한하는 규칙을 추가했다. 최대 2개, 3개, 4개로 각각 백테스트를 돌렸다.

조건CAGR최대낙폭샤프하락·횡보장(2021~2023)

제한 없음 (현재) +12.0% -56.4% 0.60 +39.9%
업종당 최대 4종목 +11.4% -56.1% 0.57 +17.7%
업종당 최대 3종목 +10.5% -56.9% 0.54 +10.9%
업종당 최대 2종목 +11.3% -59.9% 0.56 +6.6%

전부 나빠졌다.

그런데 단순히 수익만 깎인 게 아니었다. 최대낙폭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2종목 제한에서는 -56.4%에서 -59.9%로 더 나빠졌다. 분산의 목적은 위험을 줄이는 건데, 위험은 그대로고 수익만 줄어든 셈이었다.

가장 눈에 띈 건 마지막 열이다. 하락·횡보장 구간 수익이 +39.9% → +17.7% → +10.9% → +6.6% 로 제한을 조일수록 정확히 비례해서 무너졌다.

걱정했던 리스크가 사실은 수익의 원천이었다

원인은 명확했다. 은행주 쏠림 자체가 하락장에서 이 전략이 버틴 이유였다.

은행주는 저성장·고배당 특성 때문에 시장이 무너질 때 상대적으로 덜 흔들린다. 배당 수익률이 방어선 역할을 하고, 애초에 기대가 낮게 잡혀 있어서 실망으로 인한 급락 여지도 작다.

업종을 억지로 분산시키면 그 방어력을 걷어내는 꼴이었다. 대신 들어오는 종목들은 변동성이 더 큰 업종이라 낙폭도 줄지 않았다.

분산이 항상 옳다는 통념이 이 전략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미 특정 성격(저PBR)으로 종목을 걸러낸 상태에서 업종만 억지로 흩뿌리면, 전략이 노렸던 성격 자체가 희석된다.

업종당 보유 제한을 강화할수록 하락횡보장 수익률이 39.9%에서 6.6%까지 하락한 막대그래프


실험 2 — "그거 밸류업 정책 특수 아니야?"

이 결과를 정리하고 있는데 더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왔다.

"이거 최근에 금융권 장이 좋아서 그런 거 아니야? 최근 데이터만 그런 거 아니야?"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라는 변수

정부는 2024년 1월 17일 민생토론회에서 상장회사 주가가 기업가치보다 낮게 평가되는 현상을 극복하겠다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공표했고, 이어 1월 24일 금융위원장이 한국거래소 등과 함께 개최한 1차 세미나에서 지원방안의 주요 내용을 소개했다.

이 정책의 핵심 타깃이 바로 저PBR 종목, 그중에서도 은행·금융주였다. 발표 직후 외국인 순매수 상위 종목에 금융주를 비롯한 저PBR주가 다수 이름을 올렸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였다.

즉 내 전략이 최근에 좋았던 게 실력이 아니라 일회성 정책 이벤트에 올라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전략은 정책 효과가 소진되는 순간 무너진다.

바로 확인해야 했다.

정책 발표 전후로 쪼갰다

세미나 발표일인 2024년 1월 24일을 기준선으로 잡고, 전체 기간을 둘로 나눴다. 비교 대상은 그냥 40종목을 보유만 하는 경우(기준선)  저PBR 전략이다.

기간그냥 보유저PBR 전략저PBR의 초과수익

2018 ~ 2024.1
(정책 이전, 5.9년)
 -1.4%
누적 -8.0%
 +0.7%
누적 +4.4%
+12.4%p
전략 승
2024.1 ~ 현재
(정책 이후, 2.4년)
 +55.1%
누적 +183.2%
 +45.2%
누적 +142.5%
-40.8%p
보유 승

연 55.1%가 과해 보일 수 있는데, 2.4년 누적 183.2%를 연환산한 값이라 계산상 맞는 숫자다. 이 구간이 그만큼 이례적인 강세장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과는 걱정했던 것과 정반대였다.


최근 수익은 전략의 공이 아니었다

최근 2년의 대박 수익은 저PBR 효과가 아니었다. 시장 전체가 오른 것이었다.

그냥 40종목을 사서 아무것도 안 하고 들고만 있었어도 연 55.1%다. 저PBR 전략은 45.2%로, 오히려 40%포인트 넘게 뒤졌다. 이 기간은 반도체 랠리로 시장 전체가 밀어올려진 시기였고, 은행주 중심인 저PBR 전략은 그 랠리를 따라가지 못했다.

정책 특수를 의심했는데, 확인해보니 정책 특수조차 제대로 못 누린 셈이었다.

그럼 이 전략의 실력은 어디에 있었나. 정책 발표 이전, 시장이 죽어 있던 5.9년 구간이다.

  • 그냥 보유: 연 -1.4% (마이너스)
  • 저PBR 전략: 연 +0.7% (플러스 방어)

이 구간은 밸류업 정책과 아무 상관이 없다. 정책 이전이니까. 화려한 숫자는 아니지만, 시장이 돈을 잃는 동안 잃지 않았다는 게 이 전략이 실제로 한 일이었다.

밸류업 정책 발표 전후 구간별 그냥 보유와 저PBR 전략 연평균·누적 수익률 비교 그래프


두 실험을 합쳐서 보면

따로 돌린 두 실험의 결론이 같은 곳을 가리켰다.

실험발견

업종 분산 실험 은행주 쏠림이 하락장 방어력의 원천이다
정책 특수 검증 전략의 실력은 하락·정체 구간에서 나왔다

저PBR 전략의 정체는 "많이 버는 전략"이 아니라 "시장이 안 좋을 때 덜 잃는 전략"이었다. 은행주 쏠림이 그 방어력의 원천이고, 그 방어력이 진짜로 발휘된 건 정책과 무관한 하락·정체 구간이었다.

목표 수치를 다시 봐야 했다

이건 처음 세웠던 "연 12% 목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숫자에는 최근 강세장의 몫이 크게 섞여 있다.

앞으로 성장주 중심의 랠리가 이어진다면 이 전략은 시장 평균보다 덜 벌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건 그게 전략이 고장 난 게 아니라 원래 그런 성격이라는 점이다.

이걸 미리 알아두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 모르면 6개월쯤 시장에 뒤처졌을 때 "이 전략 망가졌나" 하고 파라미터를 만지기 시작한다. 그게 대부분 시스템이 망가지는 경로다.

그래서 기준을 이렇게 바꿨다.

  •  절대 수익률로 전략을 평가하지 않는다
  •  같은 기간 그냥 보유했을 때와 비교해서 평가한다
  •  상승장에서 뒤처지는 건 실패가 아니라 예상된 동작으로 간주한다
  •  하락·횡보 구간에서 방어력이 사라지면, 그때가 진짜 이상 신호다

이번 편에서 배운 것

두 실험 모두 직관이 틀렸다는 걸 데이터가 알려준 사례였다.

  • "쏠림은 위험하다" → 그 쏠림이 방어력의 원천이었다
  • "최근 수익은 정책 특수일 것이다" → 정책 특수는커녕 시장에 뒤처지고 있었다

공통점은 둘 다 의심을 실험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걱정만 하고 넘어갔다면 업종 제한을 넣어서 전략을 망쳤을 것이고, 최근 수익률을 그대로 믿었다면 지킬 수 없는 기대치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지난 편의 호가 바운스도 그랬다. 시스템을 만드는 일의 상당 부분은 좋아 보이는 숫자를 의심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편 예고

전략 얘기는 여기까지가 큰 줄기다. 이제부터는 이 전략을 실제로 돌리기 위해 붙잡고 씨름했던 개발 이야기다.

공식 문서에도 안 나와 있는 API 응답 구조를 직접 호출해서 알아낸 과정, 그리고 실행 도중 콘솔 인코딩 때문에 프로그램이 끝난 뒤 입력하는 다음 명령어까지 깨지던 버그를 쫓아다닌 이야기를 다룬다.


이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개인적인 AI·자동매매 시스템 개발 과정의 기록입니다. 백테스트 결과는 과거 데이터에 대한 시뮬레이션이며 미래 수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언급된 종목은 백테스트 과정에서 선정된 예시일 뿐 추천이 아닙니다.